본문 바로가기
2025

진실은 어떻게 가공되는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공범

by 달빛작가 2025. 9. 17.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한때 그의 작품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멀어졌던 인연을 『가공범』을 통해 다시 잇게 되었다.

 

작가 특유의 흡입력은 여전하여, 한번 책을 잡자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가공범』은 한 정치인 부부의 저택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 시작된다.

단순한 화재로 보였던 사건은 부검 결과 교살 흔적이 발견되며 살인 사건으로 전환된다. 평범하지만 우직한 형사 고다이 쓰토무는 이 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범인 찾기를 넘어,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고 가공되는지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익명의 편지, 왜곡된 증언, 그리고 쉽게 흔들리는 여론은 진실의 퍼즐 조각을 흩뜨리고, 독자는 누가 범인인지보다 진실이 어떻게 조작되는지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날카로운 단서 조각을 통해 인간 군상의 민낯을 드러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미덕은 빛을 발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와 뒤틀린 욕망으로 얽혀 있으며, 이들의 불완전함과 왜곡된 심리는 독자에게 섬뜩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나도 조금만 계기가 있다면 저렇게 왜곡될지 모른다”는 무서운 설득력은 그의 작품이 가진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고다이 형사는 번뜩이는 재능을 가진 천재형 탐정이 아니다.

그는 오로지 끈기와 성실함으로 사건의 실체에 다가선다. 화려한 직감보다는 묵묵히 발로 뛰는 그의 모습은 진실에 다가서는 힘이 재능이 아니라 끈기와 성실함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가 40년 작가 생활을 통해 얻은 통찰이 이 인물에 녹아 있는 듯하다.

『가공범』은 단순히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를 넘어, '우리가 믿는 것은 과연 사실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뉴스와 SNS에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쉽게 가짜에 속고, 허상에 휩쓸린다.

 

하지만 작가는 결국 진실은 제자리를 찾아가며, 느린 진실이 빠른 거짓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의 재미에 충실하면서도, 진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사회적 거울과 같은 작품이다.

오랜만에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깊어진 문학 세계에 감탄하며, 다음 작품 또한 기대하게 된다.